70주년 기념일을 엿새 앞두고 열린 이번 전시회 개막식에는 시진핑 주석뿐 아니라 리커창 총리와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 등 중국 지도부 서열 1~3위가 모두 참석했습니다. 다른 정치국 상무위원도 전원 참석했고, 왕치산 국가 부주석까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회의 석상이 아닌 이런 행사장에 다 함께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중국이 왜 이렇게 '한국전쟁 띄우기'에 열을 올릴까요.
● 시진핑 '적'이란 표현까지 사용…미국 겨냥했나
시진핑 주석은 개막식에서 "70년 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서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며 한국전쟁 참전의 당위성을 강조했습니다. 중국은 줄곧 한국전쟁은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미국이 타이완 등을 군사적으로 압박했고, 한국전쟁을 빌미로 북한과 접한 중국 동북부 접경 지역에 전투기로 포격을 가해 왔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은 북한을 도와준 전쟁을 넘어 중국 본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강변합니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인민지원군이 항미원조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면서 "정의의 승리, 평화의 승리, 인민의 승리"라고 했습니다. 눈여겨 볼만한 점은 시진핑 주석이 '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시 주석은 "참전한 인민지원군의 혁명 정신을 모두 배우라"며 항미원조 정신 계승을 역설했는데, 그러면서 "위대한 항미원조 정신은 중국 인민이 모든 시련과 모든 강대한 적을 이겨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미·중 갈등을 감안할 때, 시 주석이 언급한 '강대한 적'이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읽히기에 충분합니다.
● "우리는 잊은 적이 없다"…전사자 희생 강조
중국 관영매체들도 거들고 나섰습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97,653'이라는 숫자를 크게 표시한 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 전사자의 숫자라며 '우리는 잊은 적이 없다'고 썼습니다.
또, 중국 관영 CCTV도 한국전쟁 관련 특집 프로그램을 잇따라 편성해 황금 시간대인 저녁 8시 중국 전역에 방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부터 '항미원조 보가위국', 즉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하고 국가를 수호한다'는 제목의 20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있고, 18일부터는 '평화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다른 다큐멘터리 6부작을 방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다큐멘터리의 공통점은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소규모 무장 충돌과 마찰에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거대한 대포의 굉음이 조선(한반도)의 대규모 내전 발발을 알렸다"는 식입니다. 마치 한국전쟁이 우발적으로 일어났다는 뉘앙스입니다. "미국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임을 강조하려다 보니 의도적으로 언급을 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중국군이 미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 장진호 전투, 상감령 전투 등은 크게 부각시킵니다. 당시 중국군 전사자들의 희생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장진호 전투에서 가장 비장한 희생자는 바로 꽁꽁 얼어붙어 동사한 장병들이다", "그들은 모두 진격 자세를 유지하며 죽어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들 다큐멘터리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마오쩌둥 주석의 장남 마오안잉에 대해서도 비중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 "미국 대선 누가 당선돼도 반중 노선 안 바뀌어"
중국의 이런 행보는 2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중국 매체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민주당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중국에 대한 견제 기조, '반(反)중국' 기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비공식 대변인'이라 불리는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미국은 이미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국에 대한 적대적인 전략을 수립했다"며 "트럼프가 당선되든 바이든이 당선되든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 방향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미·중 관계가 갑자기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중국의 '항미원조 띄우기'는 미국 대선 이후까지를 대비한 장기적인 포석으로 풀이됩니다. 외부의 적에 맞서 애국주의를 고취해 내부 결집을 도모하려는 의도로 읽힙니다. 하지만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수상 소감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중국의 이런 과도한 애국주의는 다른 나라의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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