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콘조이웰라 후보, 무역 관련 경험 부족해 부적절"
미국 반대에 EU·中·아프리카 등 다른 회원국 불쾌감
사무총장 선출, 美 대선에 달려…트럼프 재선 땐 투표
바이든 당선 땐 합의 관행 존중해 지지 후보 바꿀 수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차기 사무총장으로 대다수 회원국이 지지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아닌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본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밀면서 선거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면 유 본부장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지만 가능성이 낮고 WTO 회원국 간 분란을 초래해 미국과 함께 한국의 대외 이미지도 실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WTO는 사무총장을 회원국 간 전원 합의로 추대하는 전통이 있다. 164개 회원국 중 1개라도 반대하면 추대가 불가능하다. 나이지리아 외무장관, 재무장관 출신의 오콘조이웰라 후보는 유럽연합(EU)과 일본,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WTO에 따르면 미국은 이날 27개 국가 대표단이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오콘조이웰라 후보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미국 측은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사무총장이 되기에 경험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을 인용해 전했다.
미국 측의 주장에 회의에 참석한 중국과 EU,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국가 대표단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들은 "미국이 회원국을 괴롭히려 하고 있으며, (오콘조이웰라 후보 선출) 반대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다음달에 임명을 위한 투표를 강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서방국가의 대사는 WSJ에 "투표를 한다고 가정하면 나이지리아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99%"라고 말했다. WTO는 미국을 포함한 164개 회원국 간 전원 합의를 계속 추진한 뒤 실패하면 11월 9일 일반 총회에서 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미국이 나이지리아 후보를 반대한 대외적인 이유는 '경험 부족'이지만 WTO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삐딱한 시선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 간 무역분쟁 중재를 하는 WTO가 다자 무역을 중시하면서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의 특혜를 봐줬다고 비판했다.
백악관 무역 최고위급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가 특히 유 본부장을 지지하고 있는데, 오콘조이웰라 후보가 세계은행에 재직하며 미국 내 다자무역 지지자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와 가깝게 지냈던 것을 안좋게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오콘조이웰라 후보는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그녀가 고위 관료를 역임한 나이지리아가 중국으로부터 금융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도 미국이 안좋게 보는 부분이다. 중국은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나이지리아의 대규모 인프라 건설에 공공부채의 4%에 이르는 31억2000만달러를 대출해줬다.
차기 사무총장이 누가 될 지는 WTO 총회 전에 열리는 다음달 3일 미 대선 결과에 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미국은 유 본부장 지지 의사를 철회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WTO는 총회에서 회원국 투표로 차기 사무총장을 결정할 전망이다.
WTO가 투표로 사무총장을 결정하는 건 설립 이래 처음이다. 회원국 간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중시해온 기구의 설립이념이 뿌리 채 흔들린다. 지난 1999년에도 WTO 회원국이 뉴질랜드 후보와 태국 후보로 나뉜 적이 있지만 결국 두 후보가 임기를 절반씩 나눠 사무총장을 하는 절충안에 합의했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WTO는 일반 총회를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내년 1월 20일로 미룰 것이라고 블룸버그가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차기 USTR 대표를 임명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수 있지만 오콘조이웰라 후보 추대에 동의하며 WTO의 합의제 전통을 지키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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